"강제 회수 당한 '신은미의 책'이 '종북' ?"..국가기관의 이율배반

이규성 2015. 1. 14.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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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최근 강제출국한 재미동포 신은미(54)씨의 저서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가 회수조치돼 논란이 거세다. 독자들은 "책에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할 만한 내용이 없고, 검찰 등의 조사에서도 밝혀진 것 아니냐"며 "선정 취소 및 회수가 정당성 없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 책은 2013년 6월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문학도서에 선정돼 1200여권이 도서관 등에 배포돼 있다. 이에 문체부는 우수도서 배포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통해 13일 회수에 돌입했다. 신씨는 그간 전국순회콘서트를 열고 '남북 평화통일'을 주장, 보수언론 등으로부터 '종북몰이'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강제 출국에 앞서 신씨는 검찰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를 조사받았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신씨는 이화여대 음대를 졸업하고 미국 미네소타주립대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대학에서 성악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친 바 있다. 신씨는 2011년 10월부터 2013년 9월 새 여섯 차례에 북한을 여행했으며, 이 중 초기 세 차례에 걸친 여행담을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라는 책으로 엮었다.

이 책은 굳이 장르를 구분한다면 문학류에 포함된다. 신씨는 애초에 북한여행이 내키지 않았으며 책 출간도 고려하지 않았다. 처음 별 생각 없이 남편 권유로 여행길에 나섰다가 '우리와 똑같이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확인하고 분단 조국의 아픔을 절감, 동포로서 무심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당초 신씨는 북한 사람을 만나기 전 '묻지마 반공주의자'였으며 책에는 여행 도중 종종 남편으로부터 '꼴통'이라는 놀림을 당하는 모습도 그려진다. 실제로 외할아버지는 반공법 제정에 참여한 국회의원일 정도로 신씨의 집안은 '보수적 내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자신이 목격한 북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일기체로 정리, 사진과 함께 2011년부터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 연재, 수십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연재 당시 후원자가 8500여명을 넘어설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추후 이를 엮어 책으로 출간했다. 바로 이 책이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라는 것으로 우수문학도서 선정 취소 및 회수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를 불러 일으켰다. 출간 당시 독자들 중에는 실향민이나 이산가족 등 분단의 비극을 안고 사는 이들이 많았다. 이들으로부터 애절한 사연과 격려가 쏟아져 눈길을 끌기도 했다. 개중에는 비난도 없지 않았으나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함께 슬퍼했다.

신씨는 첫 번째 여행 이후 북한에서 만난 사람들이 눈에 밟혀 서둘러 두 번째 여행을 준비할 정도로 북한과 북한 동포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그리고 북한여행을 통해 '우리는 오랜 역사와 문화를 통해 이뤄진, 변하려야 변할 수 없는 민족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려서 받은 반공 교육 때문에 북한 사람들에게 선입견을 가진 것을 깨닫고 당황하는 모습도 여러 군데 드러난다. 책에서 신씨는 아쿠다가와상 수상자며 우리에게 '풀하우스' '온에어' 등으로 잘 알려진 재일동포 작가 유미리가 스스로를 '뿌리 없는 풀'이었다고 불렀다가 북한을 여행 후 '평양의 여름 휴가:내가 본 북조선'이라는 책을 쓰고는 "마음이 조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고백한 것처럼 자신도 북한을 여행하고서야 변화가 있었음을 고백한다.

책 내용과 관련, 성불사에 방문했을 때 구두 신은 스님을 보고 폭소를 터트리고는 오히려 자신의 선입견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모습도 나타난다. 또 홍난파 작곡, 이은상 작사의 '성불사의 밤'을 듣고는 친일파를 청산했다는 북한이 왜 이런 노래를 버젓이 틀고 있나 고개를 갸웃한다. 홍난파나 이은상은 친일전력을 가진 이들인 까닭이다.

2013년 가을 여행 당시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 상태가 벌어졌을 때 미국 언론들은 북한의 군사훈련 장면을 연일 내보내며 북한이 전쟁 준비로 혈안이라고 보도한 것과는 달리 평양에는 각종 건설 공사로 분주한 걸 보고 자신의 상식을 의심하기도 한다.

이 같은 책을 당초에는 우수문학도서로 선정하고 정치적 논란이 일자 취소 및 회수조치한 문체부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한국작가회의 관계자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정신을 수호해야 할 국가기관이 정치에 함몰돼 현대판 분서갱유를 자행했다"고 말했다. 온라인상에서도 찬반 여론이 엇갈리며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네티즌들은 "콘서트가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책 내용에도 북한을 찬양하는 대목이 없는 데도 강제 출국에 이어 책 회수는 지나친 처사"라는 의견이다. 도서관 관계자들도 "우수도서 선정과 취소, 회수 등의 조치는 초유의 사태"로 "책은 결코 정치에 의해 훼손돼서는 안 될 대상"이라고 말했다. 출판계의 한 인사는 "오히려 책에 대한 관심만 더 불러일으켜 국가가 노이즈 마케팅하는 꼴이 됐다"고 힐난했다.

우수도서 선정 취소 및 회수는 작년 말 신씨의 토크 콘서트가 종북 논란을 야기하자 정홍원 국무총리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재미동포의 책이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됐다"고 말한 이후 문체부에 의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이와 관련, 정태호 경희대 교수는 "국가기관의 자의적 법 집행은 정당성 없는 폭력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 정치 질서를 권위주의, 사이비 민주주의로 퇴행시킨다"고 말했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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